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고도화되고, 인공지능(AI)의 비중이 산업 전반에 확대됨에 따라 AI 반도체에 대한 중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엔비디아(NVIDIA)와 AMD, 구글 TPU 등이 AI 칩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자체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국산 AI 반도체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AI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적 특성과 현황, 시장 포지션을 상세히 분석해 본다.
퓨리오사AI는 국내 AI 반도체 기업 중 가장 주목받는 팹리스 스타트업으로, 2017년 설립 이후 고성능 추론용 반도체 칩을 개발해왔다. 삼성전자와 AMD 출신의 백준호 대표가 이끄는 이 회사는 Tensor Contraction Processor (TCP)라는 독자적인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여, 고성능·저전력 AI 추론용 칩 RNGD(Renegade)를 출시했다.
RNGD는 FP8 기준 512TFLOPS, INT8 기준 512TOPS의 연산 성능을 자랑하며, 전력 소모는 18W로 동급 대비 최저 수준이다. 특히 Llama 2, GPT 계열 모델 등 대형 언어 모델(LLM) 추론에 최적화되어 있어, 엔비디아 H100 대비 전력 효율에서 3배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Furiosa SDK와 PyTorch 2.x 통합 지원을 통해 개발자 접근성도 높이며, LG AI연구원, 사우디 아람코 등과 협업 중이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금은 약 1,670억 원 이상으로, 네이버 D2SF, DSC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산업은행 등이 참여했다. 202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며, IPO를 위한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리벨리온은 2020년 설립된 또 하나의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추론 및 훈련용 AI 칩을 개발하고 있다. 하버드대와 삼성전자 출신 인재들이 주도하는 이 기업은 2023년 국내 최초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인 '아톰(ATOM)'을 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ATOM은 추론 처리에 특화된 NPU(Network Processing Unit)로,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와의 협력을 통해 자율주행 플랫폼에도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특히 아톰은 메모리 접근 최적화 기술을 통해 낮은 지연(latency)과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리벨리온은 SKT와의 협업으로 AI 반도체 클라우드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한국투자파트너스, 카카오벤처스,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총 1,200억 원 이상의 투자도 유치한 바 있다.
딥엑스는 엣지 AI 반도체 분야에 집중하는 팹리스 스타트업이다. 설립 초기부터 모바일, IoT, CCTV 등 소형 디바이스에 탑재 가능한 초저전력 AI 칩 개발을 목표로 삼았으며, 대표 제품으로는 DX-V1, DX-M1 등이 있다.
이 칩들은 이미지 인식, 객체 탐지, 음성 인식 등의 기능을 소형 폼팩터에서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전력 소비는 수 mW 단위로 극히 낮은 수준이다. 딥엑스의 AI 칩은 특히 온디바이스 AI가 요구되는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 가전 등에 적합하다.
딥엑스는 2022년 시리즈 A 투자에서 150억 원을 유치했으며, 국내외 가전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칩 적용 가능성을 검증 중이다. 향후 로봇,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이 기대된다.
사피온은 SK텔레콤이 주도해 설립한 AI 반도체 전문기업이다. 2021년 분사되었으며, SAPEON X220이라는 AI 연산 전용 칩을 상용화하였다. X220은 엔비디아 T4 대비 약 1.5배 높은 성능과 80%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며, 자체 데이터센터, T Universe 서비스 등에 활용되고 있다.
사피온은 AI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해 SK하이닉스, SK스퀘어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 법인도 설립해 글로벌 진출을 시도 중이다. 또한 2024년에는 후속 모델 X330의 출시도 예고되어 있으며, 이는 GPT 계열 LLM 추론 및 훈련에 대응할 수 있는 아키텍처를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사피온은 SKT, SK하이닉스의 클라우드 및 통신망과 연계된 서비스 고도화 전략과 함께, 공공기관·국방·에너지 등 다양한 국가 기반 산업군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뉴플로잇은 인공지능 추론에 특화된 초소형 AI 칩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특히 비정형 데이터 추론에 최적화된 경량화 칩 아키텍처를 통해 영상 보안, 엣지 컴퓨팅, 스마트시티 등에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해당 기업은 한양대학교 연구진을 중심으로 출범했으며, 2023년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체결하고 시제품 테스트를 진행했다. 뉴플로잇의 칩은 FPGA 기반의 커스터마이징 가능 플랫폼을 제공하며, AI 모델 경량화 기술과 함께 산업용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시리즈 A 유치 준비 중이며, 향후 산업 안전, 재난 감지, 국방 감시용 스마트 카메라 등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산 AI 반도체 기업들은 고유의 기술과 시장 타깃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글로벌 시장 진입을 위한 몇 가지 과제도 안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슈들이 있다:
- 생태계 부족: CUDA나 ONNX와 같은 글로벌 표준 툴체인과의 호환성 확보
- 양산 능력: 안정적인 파운드리 확보와 칩 수율 문제 해결
- 브랜드 신뢰도: 글로벌 고객사와의 장기 공급 계약 체결을 위한 인증 체계 구축
- 정책 연계: 정부의 반도체 전략과 국책 과제 연계를 통한 테스트베드 확보
이러한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은 글로벌 VC 유치, 국내외 대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정책 기관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국내 유수 대학들과의 산학협력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에는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딥엑스, 사피온, 뉴플로잇 등 다양한 AI 반도체 기업들이 존재하며, 각자의 포지셔닝과 기술 전략으로 글로벌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단순히 국산이라는 명분을 넘어서, 이들 기업은 실제 시장 경쟁력, 기술력, 에너지 효율성, 시스템 통합 역량 등을 갖춘 주체들로 성장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 정책과 산업계의 관심,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술적 인정이 함께 맞물린다면, 한국의 AI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추격자가 아닌 게임 체인저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산 AI 반도체 기업들의 활약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할 것이다.